나는 한때 ‘곁에 있다’는 것이
몸으로 함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가능한 한 오래.
하지만 부모가 되고,
특히 평일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는 부모가 되고 나서
그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나는 아이들을 매일 보지 못한다.
대부분의 시간은 금요일 밤과 주말에 집중되어 있다.
그 사실이 마음에 걸릴 때도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감’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아이들 눈에 나는
겁내지 않는 사람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한 사람이며,
대부분의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모른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어떤 태도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규칙에 있어서는 비교적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일부러 한 걸음 물러선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영리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 또한,
곁에 있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한 가지 더 느낀 점이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지루함을 잘 견뎌낸다는 것이다.
항상 무언가로 채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자주 개입하면
아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해결하려는 본능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곁에 있다는 것은
항상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믿고 물러서는 것,
지켜보되 간섭하지 않는 것,
항상 가까이 있지는 않아도
의지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는 것.
나는 아이들에게
매 순간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곁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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